여의도는 모래톱으로 이루어져 이용가치가 적은 땅이었다. 일제강점기부터 1960년대 초까지 비행장으로 사용되다가 1968년 윤중제 착공과 함께 강력한 국가 주도의 개발로 신개념의 도시가 계획되고 실현되었다. 서울에서 가장 평평하고 완결된 섬 여의도는 어떻게 정치, 방송, 금융의 중심지가 되었을까?

서울역사박물관은 2007년부터 서울의 지역조사를 10년 넘게 지속해왔다. 그 32번째 시리즈로 2019년 여의도 서울생활문화자료조사의 결과를 담은 '여의도, 방송과 금융의 중심지'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에 보고서를 바탕으로 '여의도의 어제와 오늘' 특집을 시리즈로 연재한다.

모래톱 여의도, 서울의 중심지가 되다
한국 방송의 메카, 여의도
 대한민국 금융허브, 여의도

여의도는 모래로 이루어진 활량한 땅이였다. 섬 이름이 “너나 가져라”는 의미의 한자 합성어인 ‘여의도(汝矣島)’로 지어졌다는 설이 있을 정도다. 

조선 전기 이래 주로 국가가 관리하는 짐승을 기르는 목축의 공간으로 이용되었다. 세조 대 세도가인 한명회가 지은 정자 ‘압구정(狎鷗亭)’이  현재와는 달리 처음에는 여의도에 있었다가 나중에 동호로로 옮겨갔다. 그리고 소수이지만 여의도에 대를 이어 정착해 사는 사람들이 폐쇄적인 섬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었다.

1936년 10월 17일 여의도비행장에 내린 손기정(출처 : 매일신보, 제공 : 서울역사박물관)
1936년 10월 17일 여의도비행장에 내린 손기정(출처 : 매일신보, 제공 : 서울역사박물관)
한국전쟁 당시 여의도기지에서 출격 대기 중인 F-51D전투기 (출처 : 항공징비록, 제공 : 서울역사박물관)
한국전쟁 당시 여의도기지에서 출격 대기 중인 F-51D전투기 (출처 : 항공징비록, 제공 : 서울역사박물관)

 

일제강점기 이후 일본군은 여의도를 군용지로 매수하고 거주하는 농민을 퇴거시켜 1916년 간이비행장을 건설하였는데, 이것이 한국 최초의 비행장이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1954년 4월 26일 여의도 국제공항이 정식 개항하였다. 하지만 홍수에 취약했던 여의도의 국제공항 기능은 1961년 김포로 완전히 옮겨갔다. 1964년 4월에는 국내 항공노선까지 김포공항으로 이전함에 따라 여의도 민간 항공 시대는 완전히 끝이 났다.

1968년 밤섬폭파 버튼을 누르는 김현옥 서울시장 (제공 : 서울역사박물관)
1968년 밤섬폭파 버튼을 누르는 김현옥 서울시장 (제공 : 서울역사박물관)
1969년 한강건설계획 여의도 조감도 (제공 : 서울역사박물관)
1969년 한강건설계획 여의도 조감도 (제공 : 서울역사박물관)

 

1967년 한강의 치수와 매립지 확보를 위한 ‘한강개발 3개년 계획’으로 시작된 여의도 개발은 1968년 2월 밤섬이 폭파되며 개발이 본격화되었다. 밤섬을 골재로 사용한 윤중제가 밤섬 폭파 5개월 만에 완공되며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넓은 대지가 만들어졌다.

1971년 여의도광장에서 개최된 제23회 국군의 날 기념식 (제공 : 서울역사박물관)
1971년 여의도광장에서 개최된 제23회 국군의 날 기념식 (제공 : 서울역사박물관)
1972년 5월 1일 여의도광장에서 개최된 방첩 및 승공 국민총궐기대회 (제공 : 서울역사박물관)
1972년 5월 1일 여의도광장에서 개최된 방첩 및 승공 국민총궐기대회 (제공 : 서울역사박물관)
국회의사당 신축 기공식 모습 (제공 : 서울역사박물관)
국회의사당 신축 기공식 모습 (제공 : 서울역사박물관)
1973년 건축 중인 국회의사당 (출처 : 국가기록원, 제공 : 서울역사박물관)
1973년 건축 중인 국회의사당 (출처 : 국가기록원, 제공 : 서울역사박물관)

 

여의도는 당시 근대화·산업화로 변해 가는 도시의 이미지와 국내의 발전하는 기술을 알리기 위한 최적의 장소였다. 김수근을 중심으로 한 젊은 건축가들의 여의도 개발안을 시작으로 최첨단의 아파트 단지, 고층의 업무시설, 국내 기술과 국내 재료를 사용한 국회의사당 등이 하나둘씩 완공됐다. 또한 군사퍼레이드, 반공 관제 시위가 열리던 5·16광장이 완성됐다.

1982년 한강종합개발사업 기공식 당시 여의도 고수부지 모습 (제공 : 서울역사박물관)
1982년 한강종합개발사업 기공식 당시 여의도 고수부지 모습 (제공 : 서울역사박물관)
1987년 여의도 선착장과 유람선 (제공 : 서울역사박물관)
1987년 여의도 선착장과 유람선 (제공 : 서울역사박물관)

 

1980년대 들어서며 새로운 정권의 정당성을 위해 5·16광장의 이름을 ‘여의도광장’으로 바꾸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가 확정되며 시작된 한강개발계획에 따라 한강시민공원이 재정비되고 유람선이 다니기 시작하였다. 여의도 동쪽 끝에 당시 동양 최고의 63빌딩이 완성되어 발전된 서울의 모습을 올림픽을 통해 전 세계에 선보였다.

1980년대 후반 민주화 이후 관제 집회가 열리던 여의도광장은 대통령 유세와 시민 주도의 시위가 줄을 이었다. 1995년 서울 민선시장이 부임하며 국가권력의 상징이었던 여의도광장은 ‘여의도공원’이 되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며 초고층 빌딩들이 등장하였고, 여의도의 스카이라인이 변화하였다.

여의도 위성사진 (출처 :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제공 : 서울역사박물관)
여의도 위성사진 (출처 :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제공 : 서울역사박물관)

 

저작권자 © 센머니 (SEN Mone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