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는 모래톱으로 이루어져 이용가치가 적은 땅이었다. 일제강점기부터 1960년대 초까지 비행장으로 사용되다가 1968년 윤중제 착공과 함께 강력한 국가 주도의 개발로 신개념의 도시가 계획되고 실현되었다. 서울에서 가장 평평하고 완결된 섬 여의도는 어떻게 정치, 방송, 금융의 중심지가 되었을까?

서울역사박물관은 2007년부터 서울의 지역조사를 10년 넘게 지속해왔다. 그 32번째 시리즈로 2019년 여의도 서울생활문화자료조사의 결과를 담은 '여의도, 방송과 금융의 중심지'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에 보고서를 바탕으로 '여의도의 어제와 오늘' 특집을 시리즈로 연재한다.

① 모래톱 여의도, 서울의 중심지가 되다
② 한국 방송의 메카, 여의도
③ 대한민국 금융허브, 여의도

1976년 KBS 준공 당시 모습 (출처 : 국가기록원, 제공 : 서울시)
1976년 KBS 준공 당시 모습 (출처 : 국가기록원, 제공 : 서울시)

여의도 방송가는 1976년 KBS가 여의도에 신사옥을 건설한 이후 1980년 TBS, 1983년 MBC가 여의도로 이전하였다. 1990년 SBS도 여의도에서 개국하며 여의도는 한국 방송산업을 대표하는 대명사가 되었다. 

방송사들이 여의도에 밀집하며 자연스럽게 여의도의 방송산업이 발전하기 시작했고, 방송산업은 여의도의 주요산업 중 하나가 되었다. 방송산업과 연관된 산업들의 밀집으로 인한 공간의 변화와 문화는 여의도를 표현하는 여러 특징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였다. 

TBC 여의도사옥 전경 (출처 : KBS방송박물관, 제공 : 서울시)
TBC 여의도사옥 전경 (출처 : KBS방송박물관, 제공 : 서울시)
1979년 MBC 여의도사옥 신축 기공식 (출처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공 : 서울시)
1979년 MBC 여의도사옥 신축 기공식 (출처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공 : 서울시)

여의도의 황금기는 1980년대다. 국회의사당을 중심으로 한국거래소 등 금융가가 둘러싸고, 방송가가 형성되었다. 원효대교가 완성돼 교통이 편리해지면서 여의도는 서울 속의 ‘신도시’로 자리 매김했다. 하지만 2014년 상암 디지털미디어시티로 SBS와 MBC가 이전하고 일산, 목동등으로 방송가가 분산되면서 현재 여의도에는 KBS만이 남아 한국방송의 상징으로 자리하고 있다. 

이산가족 벽보가 붙은 KBS 앞 (출처 : KBS 이산가족 찾기 아카이브, 제공 : 서울시)
이산가족 벽보가 붙은 KBS 앞 (출처 : KBS 이산가족 찾기 아카이브, 제공 : 서울시)

여의도 방송가의 주요사건으로 ‘1983년 이산가족 찾기’와 ‘1988년 서울올림픽’를 빼 놓을 수 없다.

기네스북에 올라간 세계 최장 생방송 기간은 ‘138일 453시간 45분’으로, 1983년 KBS의 ‘이산가족 찾기 생방송’이 기록돼 있다. 1983년 6월 30일 밤 120분 분량의 프로그램이 나간 이후 KBS는 이산가족을 찾는 벽보로 뒤덮이게 됐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총 1만 189명의 이산가족이 상봉하였는데, 6·25전쟁(38.8%)과 1·4후퇴(26.9%)때 헤어진 형제자매(50.1%)를 찾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이산가족 찾기 생방송 프로그램 관련 2만 522건의 기록물은 2015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1988년 제24회 서울올림픽 개최로 인해 여의도에는 국제방송센터가 건립되었다. 올림픽 주관방송사인 KBS는 국제신호를 제작해 세계 방송기관에 공급하는 역할과 함꼐 국제방송센터를 설치·운영 하였다. IBC는 올림픽경기가 진행되는 각 지역에서 송출된 국제신호를 취합해 다시 각 방송사로 분배하는 역할을 하며, 개별 방송 설비를 가동하는 역할을 했다.

저작권자 © 센머니 (SEN Mone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