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 -WA(스타와) 미래 글로벌 스타를 꿈꾸는 사람과 밀착 인터뷰
임다연 교수님, 임다연 선수, 임다연 코치, 뭐라고 불러야 되나요?
박사학위와 아빠를 맞바꿨다는 생각에, 처음으로 삶에 후회를 느껴

사진 - 국가대표 출신 수영선수 겸 코치 겸 교수 임다연
사진 - 국가대표 출신 수영선수 겸 코치 겸 교수 임다연

'당신은 살아오면서 상을 받아 본 적이 있습니까? 있다면 어떤 상을 받았나요?'

이 질문을 받으면, 불편해 할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상을 받아 본 적이 없는 사람들, 그리고 상을 너무 많이 받아서 일일이 나열하기 힘든 사람들! 수영선수로 활동한지 올해로 21년, 지금도 현역 수영선수로 활동을 하고 있으면서, 400여개의 메달을 획득하고, 올해도 금메달 하나를 벌써 추가한, 한국대표 수영선수 '임다연'을 만나서 인터뷰 했다.

참고로 임다연 선생님이 현재 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편하게(?) 임다연 선생님이라고 부르고 있다. 인터뷰를 읽기 전에 미리 몇가지 정보를 전달한다면, 운동 선수(?)의 외모가 아니라 모델의 외모를 소유하고 있다. 사진만 봐도 알수 있듯이, 헐리우드 모델 같은 포스다!  그런데 현직 교수다. 교수의 외모와도 매칭이 되지 않는다. 그러데 이번 전국체전에서 오랜만에 금메달을 하나 추가 했다고, 기쁘다며 매우 겸손하고 순수하게 말했다. 

한마디로 정의 하기 힘든 정말 범접하기 힘든 종류의 인물이다.

[센머니=현요셉 기자]

Q. 본인에 대한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국가대표 출신 수영선수 임다연입니다. 현재 극동대학교 사회체육학과 전임교수로도 재직중에 있습니다.

Q. 어린시절 본인의 꿈과 현재 직업, 그리고 직업을 선택한 계기? 
저는 학생선수시절 때부터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실업팀’ 선수만을 꿈꿔왔습니다. 그러다가 막상 실업팀 선수가 되고 나서 안정적이지 못한 직업이라고 느꼈습니다. 직업으로 수영선수를 오래할 수는 없다는 것을 어릴 때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실업팀 선수 생활을 하면서 미래를 위한 준비에 대해서 고민을 하였고, ‘지금부터 준비가 필요하겠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수영 관련 자격증을 일찍이 취득을 했고, 덕분에 “한국 수영 최초 선수 겸 코치”의 타이틀을 갖게 되었습니다. 자격증 취득에 만족하지 않고 선수 생활을 하면서 꾸준하게 학업도 이어 나갔습니다. 이후, 8년간 선수 겸 코치로 활동하다가 박사과정 후반부에 접어들며 코치직을 내려놓고, 학업에 더욱 매진했습니다. 그렇게 박사과정을 무사히 마치게 되었고, 박사과정 졸업 직후 수영 꿈나무 대표팀 감독을 역임했습니다, 동시에 선수생활도, 학업도, 감독직도 정말 열심히 했던 것 같네요. 그 결과, 현재는 다시 한번, 한국 최초 “현역선수 겸 교수”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사진 - 국가대표 출신 수영선수 겸 코치 겸 교수 임다연
사진 - 국가대표 출신 수영선수 겸 코치 겸 교수 임다연

Q. 임다연 교수님의 코치나 감독 등 교육자 경력에 대해서 소개해 주세요.
강의나 교습 등 경력은 더 많지만, 제가 소속되어 전임으로 맡았던 코치나 감독 경력은 10여년 정도 된 것 같습니다. 2012년부터 클럽팀 메인 코치를 시작으로 현재는 사회체육고 전임교수로 활동하고 있으니까요.

2012년~2018년 DP수영클럽팀 메인코치
2013년~2015년 서울조원초등학교 수영부 전임코치
2020년~2021년 수영 꿈나무 대표팀 감독
2017년~현재 스포츠윤리, 스포츠인권 교육 전문강사
2017년~현재 아레나(수영복 브랜드) 전속모델

Q. 수영은 몇 살 때부터 시작했나요?
저는 7살에 처음 수영을 시작해서 올해로 25년차가 되었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정식 수영선수로 등록을 해서 활동을 하였고, 선수 생활은 올해로 21년차가 되었습니다. 실업팀에 소속되어 수영선수로는 활동한지는 벌써 12년차가 되었네요.

Q. 코로나19로 인한 힘들었던 점이 있었나요?
먼저 수영선수로는 수영대회가 잘 열리지 않아 동기부여가 어려웠고, 무엇보다 힘들었던 점은 수영 훈련장이 없어서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코로나가 아직 완전하게 없어진 것은 아니라 여전히 연습 시설이 많이 없기는 합니다. 교수로써 힘들었던 점은 비대면으로 수업을 진행하다 보니, 처음에는 비대면 수업에 교수도 학생도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렸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비대면 수업은 지속되었고, 그렇다 보니 학생들과 만나 소통할 기회가 적어서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제가 맡은 직업이나 역할에서는 다른 분들에 비해서 코로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시합이 많이 열리지는 않았지만, 열리는 대회도 있어서 시합을 할 수 있었고, 비대면으로 수업을 하기는 했지만, 수업을 진행할 수는 있었으니까요. 

 

사진 - 국가대표 출신 수영선수 겸 코치 겸 교수 임다연
사진 - 국가대표 출신 수영선수 겸 코치 겸 교수 임다연

(처음에 위의 사진보고 바디프로필 연출 사진인줄 알았다. 임다연 선수 본인이 대회에서 획득한 메달들 이라고 하며, 사진 촬영 당시 너무 많아 모두 다 가져 올 수 없었다고 한다)

Q. 대회 수상경력 경력과 자격증 등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약 400여개의 대회 입상 메달이 있고, 제 직업과 관련해서 20개 정도의 자격증이 있습니다. 박사과정도 수료가 아니라, 논문까지 모두 무사히 마치고 박사과정 정식 졸업을 했습니다. 올 해 첫 전국대회에서도 금메달을 땄는데, 사실 금메달은 굉장히 오랜만에 땄고, 교수로 임용되고 딴, 첫 금메달이라 저에게는 의미가 남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주변에서는 ‘교수 임용되고 왜 선수를 계속하냐’고 ‘그만해라’고 저에게 정말 많이 저를 아끼는 차원에서 조언을 해줍니다. 저도 두가지 직업을 모두 훌륭하게 수행하는 것이 힘들다는 느낄 때가 많습니다. 선수의 기본은 훈련인데, 교수의 기본도 수업을 위한 많은 준비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모두 힘들다고 느끼는 날이 많긴 합니다. 이번에 전국체전에서 받은 금메달은 제가 ‘둘 다 할 수 있다’는 용기와 동기부여를 해주는, 그런 메달이었습니다. 자격증은 아무래도 스포츠지도사 자격증을 유용하게 쓰는 것 같아요. 저는 수영과 수상스키에서 생활, 전문스포츠지도사 자격증이 있는데 대학에서 수업할 때에도 선수들을 지도할 때에도 유용해요.

Q. 수영선수와 교수, 둘 중 어떤 직업이 더 힘드나요?
사실 어떤 직업이 힘들다고 정의하기 보다는, 수영선수와 교수를 병행하는 것이 가장 힘든 것 같습니다. 몸이 힘들고 지치는 것은 둘째치고, 두 직업에 필요한 시간도 에너지도 각각 다른 것 같습니다. 본의 아니게 시간과 에너지가 분산이 되니까, 각 분야에 올인하지 못하는 느낌도 들고, 한 분야에 모든 열정을 쏟으면 지금보다 더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게 올인 하지 못하고 있는 제 스스로에 대해서 원망스러울 때가 있어, 그런 부분이 많이 힘든 것 같습니다. 삶이 산술적이지는 않지만, 이해하기 쉽게, 쏟을 수 있는 에너지와 열정을 100%라고 보면, 교수, 선수, 코치 이렇게 33%씩 나눠서 사용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 같습니다. 저는 최선을 다해서 제가 쏟을 수 있는 열정과 에너지 100%를 쓰더라도, 정작 각의 분야에서의 경쟁은 해당 분야에 100% 노력을 쏟은 사람들과 하기 때문에, 그런 경쟁에서 제 준비가 미흡한 부분이 느껴질 때면 부족함을 채우지 못하고 있는 제 자신에게 괴로움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사진 - 임다연 선수 아버지(좌), 임다연 선수(우)
사진 - 임다연 선수 아버지(좌), 임다연 선수(우)

Q. 인생을 살면서 후회를 한적이 있나요?
제가 박사과정 때 선수생활을 병행하면서 진짜 연구실에서 밤샘을 하고, 라꾸라꾸(간이침대) 펴고 쪽잠 자면서 정말 힘들게 선수생활과 공부를 병행했습니다. 그래서 별명이 7호관 좀비였어요. (7호관은 국민대학교 체대 건물) 그렇게 저의 미래를 위한다는 명분아래 공부와 운동에 인생을 걸었고, 박사 졸업식을 앞두고 아빠가 돌아가셨어요. 제가 외동딸인데 제가 바쁘다는 핑계로 가족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했던 사실에 너무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아빠 소원이 제 박사 졸업식 오는 거라고 늘 말씀하셨는데, 아빠는 제 졸업식을 결국 보지 못하셨어요. 그래서 졸업식 날 박사가운을 입고 혼자 펑펑 울었어요. 가족과 내 미래를 위해 쏟은 그 시간과 열정이 무슨 소용이 있는지 후회만 밀려왔어요. 박사학위와 아빠를 맞바꿨다는 생각에, 제 인생처음으로 받은 박사학위였지만 제가 박사학위 취득한 것 자체가 후회로 다가왔어요. 저는 30년 인생을 살아오며 단 한순간도 후회하는 순간이 없을 정도로 매 순간 최선을 다 했다고 생각하며 살았어요. 그런데 그 때가 유일하게 제 삶에 대한 후회가 아주 많이 되더라고요. 그런 후회와 충격이 쉽게 지나가지는 않았지만, 그 또한 아빠를 생각하면서 극복할 수 있었어요. 그래도 아빠를 볼 수는 없지만, 항상 제 옆에서 늘 저를 지켜봐 주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어요.

Q. 가르치는 일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무엇인지요?
EPISODE 1 - 나도 동안인데

스물여섯살때 처음으로 강단에 섰는데, 대학생들을 가르치기에는 ‘어린나이’잖아요. 그래서 저 나름대로는 나이들게 보이려고 정말 많이 노력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제 나이보다 다들 많게 보시더라고요. 저도 여자이기도 하고, 저도 어리게 보이고 싶은 마음이 많은데, 이제는 나이보다 더 늘게 보니, 조금 많이 서운하더라고요. 

EPISODE 2- 어떤 일이든 처음은 힘들어
스물한살에 DP팀을 만들고, 초등학교 전임코치로 활동을 시작했어요. 당시에는 선수가 팀을 만들어서 코치를 겸하여 활동을 한다는 사실이, 있을 수도,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어요. 그리고 제가 21살이라는 너무 어린 나이의 현역선수이면서 또 여자였다는 점도 주변에서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큰 원인이었죠. 그래서 경기장가면 다른 선생님들에게 진짜 욕도 많이 먹었는데, 제가 포기하지 않고 몇 년을 운영하고 나니, 선수 겸 코치가 하나 둘 나오더라고요. 처음(국내 최초 선수 겸 코치) 그 길을 가서 힘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뿌듯했어요.

EPISODE 3 – 나는야 젊은 꼰대
제가 만으로 28살, 한국나이로 30살에 전임교수임용이 되었으니, 수영계에서는 최연소 교수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하지만 우리나라 같은 경우, 특히 선수로서는 30대 여성선수가 거의 없으니, 선수로는 오히려 완전 노장이죠. 그래서 정체성에 혼란이 오더라고요. 그러면서 시나브로 ‘젊은 꼰대’의 성향이 생긴 것 같아요.

 

사진 - 국가대표 출신 수영선수 겸 코치 겸 교수 임다연
사진 - 국가대표 출신 수영선수 겸 코치 겸 교수 임다연

Q. 수영선수와 교수라는 직업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우선 제가 노장이지만 수영선수라는 직업을 놓지못하는 이유는, 온전히 제 자신을 위한 유일한 시간이기 때문이에요. 누군가를 지도하는 직업은 사실 저보다는 타인을 위해 시간과 노력을 더 많이 사용해야 하는 것 같아요. 남을 가르치는 일은 보람은 있지만 가끔 제가 쏟은 열정과 노력에 비해서, 원하지 않은 결과가 나오거나, 제 마음처럼 지도가 되지 않을 때 회의감이 들기도 해요. 그런데 수영선수는 제가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타나고, 저만을 위해 온전하게 열정과 노력을 쏟을 수 있는 시간을 갖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매력적이라고 느껴요. 인풋이 부족하면 아웃풋도 부족하고, 인풋이 충분하면 아웃풋도 충분하게 나오는 정직한 직업인 것 같아서 너무 좋아요. 그리고 교수는 저의 말과 행동, 즉 제가 하는 교육이 누군가의 삶에 영향을 준다는 것 자체가 ‘굉장한 일’인 것 같아요. 그래서 ‘더욱 나은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점점 커지고, 그런 생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게 되고, 수영선수, 교수 모두 충분한 매력이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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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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