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하자마자 10개 프로 MC를 하며 승승장구를 하던 그는 이제 연예계 최초 심리학박사로 더 유명하다. 91년도에 연예계에 발을 디뎌 6년만에 강남에 최초에 집을 산 연예인이면서 아직도 집을 넓히지 못하고 똑같은 집에 살고 있다는 웃픈(?) 농담을 건넨 그는 연예인 심리학1호 박사 권영찬 교수다.

센머니와 인터뷰를 진행 중인 권영찬교수
센머니와 인터뷰를 진행 중인 권영찬교수

누구나 알고 있는 유명한 그가 연예인 최초 심리학 박사가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인터뷰 장에 들어선 그는 지난날 억울한 구치소 수감 얘기부터 꺼내기 시작했다. 당시 개그맨으로도 잘나갔지만 사업가로도 잘나갔던 그는 전국 32개 지점의 PC방 프랜차이즈 사장님이었다고 했다.

사건은 당시 한 지점의 아르바이트생의 신고로 시작됐다. 권교수가 마약을 하고 자신을 몇시간 동안 성폭행했다며 경찰에 거짓 신고를 했고 이는 당시 모든 프로그램을 하차하게 되고 구속수사까지 받게 된 일생일대의 사건이 된다.

그는 증거를 다 보여줬음에도 실형을 선고받았고, 나중에 고등법원까지 가서 상대 여성이 거짓말했다는 것이 드러나 무죄를 입증받게 되었다고 했다. 여성은 폭행을 당해 상처까지 났다고 했지만 진단서와 같은 아무런 증거도 없이 구속된 유일한 사례였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는 방송을 복귀하는 데만 2년이 걸렸고 주변의 도움을 받아 다시 재기를 하던 중 다시한번 뜻하지 않은 사고를 겪게 되었다고 했다. 바로 2007년 세트장이 무너지는 큰 사고를 당한 것. 콘크리트 바닥으로 떨어진 그는 왼쪽 뒤꿈치가 27조각이 나고 3, 4번 척추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하고 6개월이 넘는 시간을 병상에서 보내게 된다.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다고 그 와중에도 희망은 찾아왔다. 강남에 M&A의 귀재로 불리던 선배가 소위 대박 기미의 주식을 소개해준 것이다. 그는 “아 그동안 힘들게 살아왔던 것에 대한 보답이구나”라는 생각으로 전 재산을 들이부었고, 결론은 이 마저도 실패했다고 한다. 30억이라는 큰 돈을 잃은 그는 다시 지옥과 같은 삶을 걷게 되었다고 회상했다.

워낙 사람을 좋아하고 챙겼던 터라 수많은 사건 사고에도 주변 사람들은 끊이지 않았다. 한날은 친한 선배가 하는 일식집에 들렀고, 평소 안면이 없던 한 연예인과 지인의 소개로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고 한다. 평소에도 열심히 하는 친구라 눈여겨 보아 왔는데 그 후로부터 딱 열흘이 지난 시점, 해당 연예인의 자살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고 한다.

‘왜 이런 일을 계속 겪게 되는걸까?‘라고 생각했지만 나오는 답은 없었고 당시 마주쳤던 연예계 동료가 떠오르며 ‘내가 이런 쪽(상담)으로 조금 더 알면 그래도 어느정도 도움의 말이라도 건넬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맴돌았다고 한다. 당시 연예인 친구들 사이에서 그는 주변인들의 걱정, 고민거리도 잘 들어주며 ‘맥가이버’라는 별칭도 있었을 정도로 해결사로 통칭되고 있었다.

인생의 다사다난한 일을 겪다 보니 자연스레 심리학에 관심이 간 그는 연세대학교 상담코칭대학원 진학을 결심하게 되었다고 한다. 공부를 20년 가까이 쉬었던 터라 수업 내용을 따라 잡는게 쉽지 않아 적게는 6시간에서 8시간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공부를 해 어렵게 졸업장을 따냈다고 했다. 졸업을 하고도 2016년 국민대학교 문화심리사회학과에 들어가 다시 긴 노력 끝 박사학위도 취득하게 된다. 그는 배운 심리학을 십분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강연 요청을 받게 되었고 매주 하나씩 늘어나던 강의가 이제는 거의 일상이 되었다고 소개했다.

 

강의를 진행하고 있는 권영찬 교수
강의를 진행하고 있는 권영찬 교수

 

그는 현재 혼자 강연을 다니는 것이 아닌 40여 명의 스타강사가 소속된 회사의 대표님이기도 하다. 방송계에서 이런저런 셀럽들을 만나다 보니 자연스레 말도 잘하고 강연에 재능을 보이는 사람들을 만나게 됐고 그렇게 한 두명씩 모인게 어느덧 40명이 되었다.

대표적으로 이호선 박사의 경우 당시에는 유명세가 높지 않은 교수였지만 항상 본인이 “할 수 있다”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더니 정말 강사로 성공한 사례라고 소개했다.

재능 있는 많은 강사들을 발굴해 낸 것처럼 그는 평소 강연에서도 일반인들에게 “권영찬도 했어? 그럼 나도 충분히 가능하겠구나!”라는 용기를 심어준다고 한다. 강연을 들은 많은 관객들은 강연 이야기에 울고 웃으며 공감하고 결국 자신감을 얻고 돌아간다는 말을 전했다.

그는 직접 관객들과 강의를 통해 소통하며 희망을 주는 것처럼 평소 강연에서도 ‘소통’의 중요성에 대해 많이 언급한다. 가정과 직장 내 불통이 말그대로 고통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말은 그가 강연에서 남긴 유명한 말이기도 하다.

권교수는 이 대목을 설명하며 심리학적으로 ‘대상관계’라고 얘기하는 것이 가정 내에서 깨져 버리면 직장에 가서도 고통받는 사람이 많아 진다고 설명했다. 쉽게 말하자면 폭력을 쓰는 아버지 밑에서 자란 아이는 사회에 나가서도 아버지와 비슷한 또래의 상사를 만나면 흔히 ‘꼰대’라고 느끼기 쉽고 결국 이는 잘못된 소통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가정 내 불행은 다시 직장에서 그 감정이 표출되게 되고, 설사 겉으로 표현하지 않아도 자신은 내면 깊은 곳에서 끊임없이 상처를 받고 있고 고통을 받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권교수는 본인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스스로가 소소한 행복을 찾아가는 방법을 전파하고 있다며 본인을 바꾸려면 ‘스스로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계속해 강조했다.

스스로의 행복에 대해 설명하는 권영찬 교수.
스스로의 행복에 대해 설명하는 권영찬 교수.

 

남들의 행복을 찾아주기 위해 부던히 노력하는 그, 그는 어디서 행복감을 느낄까?

권교수는 스스로 본인이 천주교 신자였으면 신부님이 되었고 만약 불교 신자였으면 사찰에 들어가 불공을 드려야 할 사람이라고 칭했다. 그만큼 남들에게 베푸는 것이 본인의 행복이라는 이야기다.

아버지와 삼형제를 위해 희생하는 어머니를 보고 자란 권교수는 자연스레 보고 배운 것이 많다고 했다. 흔히 말하는 사주 같은건 믿지 않지만 굳이 따지자면 명리학 관점에서 “횃불같은 사주가 아닐까요?”라고 답하기도 했다. 횃불은 불이 붙을 소재가 있어야 타오르는 것으로 그만큼 남들을 밝혀주고 북돋아 주는 것을 본인 운명처럼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권교수는 실제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 스타 강사들만 배출해낸 것뿐만 아니라 한부모가정과 저소득층 가정을 도와주는 일과 개인적으로 시각 장애인 100인 개안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나눔을 실천해 오고 있었다.

베푸는 삶에 익숙해진 그는 소셜 네트워크를 하는 것도 본인이 남들에게 해줄 수 있는 ‘상담’의 연장이나 치유의 연장선으로 본다고 했다. 주변에 마음의 아픔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만 실질적으로 본인을 찾아오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소셜을 통해 희망을 전한다는 이야기다.

권교수는 최근 유튜브를 통해 미스터트롯에 나온 출연진과 그 노래에 초점을 맞춰 사람들과 소통하고 공감하며 우리 내 사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특히 콘텐츠를 통해 본인이 좋아하는 가수를 언급해 주면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그 열정적인 ‘팬심’을 본인에게도 적용해 ‘본인부터 사랑하라’는 메시지를 꼭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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